바쁜 요즘이지만 오래전에 예매해 놓은 공연을 포기할 수 없어 어제밤에는 여자친구와 예술의 전당에 다녀왔습니다. 3시부터 시작한 컨퍼런스 콜이 6시 40분에 끝나는 바람에 여자친구를 거의 한시간 기다리게 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네요. 불행 중 다행으로 공연장에는 늦지 않게 도착했지만, 음악당을 돌아다니면서 허겁지겁 여자친구가 사온 빵을 먹어야했습니다. 예술의 전당 간다고 나름 깔끔하게 차려입고서는...

3층 오른편 대각선 맨 앞줄에서 공연을 보았습니다.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 4대가 마주보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더군요! 전 좌석이 거의 다 찼고, 4명의 피아니스트가 등장하였습니다. 곡이 끝날때마다 자리를 바꾸어 가며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워낙 정신 없는 요즘이라 미리 들어보지 못한데다가 프로그램에 현대음악이 많은 관계로 귀에 쏙쏙 들어오진 않았지만, 여러대의 피아노를 여러명의 피아니스트가 열정적으로 연주함으로써 울려 퍼지는 음악이주는 감동은 강렬했습니다.

연주하는 과정에서, 입장하고 퇴장하는 모습에서 백건우 선생님이 젊은 신예 피아니스트들을 아끼는 마음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마지막 앵콜에서는 한대의 그랜드 피아노에 4개의 의자를 세로로 붙여 놓고 4명의 피아니스트가 나란히 앉아 손을 엇갈려가면서 한곡을 함께 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신나는 맬로디를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4명의 피아니스트가 하나가 되어 즐겁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는 관객들은 함께 손뼉을 치면서 즐거운 기분을 만끽하였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너나 할 것 없이 탄성을 내지르며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비오는 날씨에 바쁜 일정에 힘들게 찾아간 공연이었지만, 공연에 대한 만족감과 음악에 대한 충만함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 다음 공연이 기대되는군요! 
어제 밤에는 한달 넘게 기다려온 백건우의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회를 다녀왔다. 공연을 늦게 발견 한 죄로 좋은 자리가 남아 있지 않아서 보는 즐거움은 포기 하고 3층에 위치한 A석으로 예매했다. 남부터미널역에서 상운이를 만나 예술의 전당까지 걸으며 각자의 건수(?)에 대한 이야기, 피아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 도착하자 지난주 금요일 피아노 리사이틀때와는 비교가 안되게 수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표를 받고 3층으로 올라가 공연장으로 들어서자 엄청난 규모에 압도 되었다. 내가 예매한 자리는 3층 C열이였는데, 무대에서 약간 왼쪽이라 피아노 건반이 훤히 내려다 보였다.

시간이 다 되어 나타난 백건우님은 차분히 피아노 소나타 11번을 시작했다. 연주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니 들으면서 판단한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것 같았다. 빠르고 정교한 손의 움직임, 미세한 강약의 조절 등에 감탄했다. 피아노를 배우면서 좌절하는 입장에서 바라보니 더욱 대단해 보였다.

11번을 지나 18번을 지나, 인터미션을 지나, 12번을 지나 드디어 14번 월광 소나타가 시작되려는 순간. 나를 포함한 관객들은 모두 자세를 고쳐 앉고 집중하는 분위기였다. 마치 월광 소나타 하나만을 듣기 위해 온 사람들처럼.

차분하게 시작된 1악장은 너무나 슬픈 느낌을 주었고, 경쾌하게 시작된 2악장이 끝나자 마자 이어지는 1초의 정적. 곧 바로 이어지는 격정적인 3악장.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물흐르는 듯 흘러가는 손의 움직임에 따라 흘러나오는 선율에 모두들 숨죽였다. 그러나 워낙 어려운 곡이고, 쉼 없이 공연을 소화해내시느라 힘드셨는지, 몇 번의 미스가 참으로 아쉬웠다.

공연이 끝나고 몇 분동안 박수가 이어졌으나, 3번의 인사 끝에 박수는 조용히 끝을 맺었고 앵콜 공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끝까지 박수를 보내며 기대하고 있던 나와 상운이에게는 그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공연이 끝나고  싸인회가 있어 백건우님의 나오실때까지 기다렸다. 특유의 하얀 목티를 입고 나오셔서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미소를 지으시며 사람들에게 싸인해 주시는 모습을 보고는 음악당을 나섰다. 싸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은 족히 일이백은 되는 것 같았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3층에서 공연을 보는 것도 꽤나 괜찮은 것 같아서, 앞으로도 부담 없이 예술의 전당을 종종 찾을 생각이다.

우연히 피아니스트 백건우님의 공연이 12월 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주일 동안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는 공연으로 12월 8일부터 14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연주회는 계속된다.

어차피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에는 늦어 버려서, 가장 저렴한 A석(2만원)으로 예매했다. 역시 이번에도 클래식을 좋아하는 상운이와 함께 하기로 했다. 3층에서 얼마나 잘 보일까만은 음악은 잘 들리겠지.

12월 11일 화요일 오후 8시 공연을 예매했는데, 이 날의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소나타 11 Bb 장조, Op. 22
소나타 18  Eb 장조
, Op. 31-3
소나타 12  Ab 장조
, Op. 26
소나타 14 c# 단조, Op. 27-2  "Moonlight( 월광
)" 

한달 동안 베토벤 소나타를 열심히 들어야겠다. 연주는 3년쯤 후에...
 
다음 이어지는 글은 음악인생에 대한 백건우님의 성찰이다. 인생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그의 마음가짐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의 공연이 더욱 기다려진다.

음악이라는 작업을 일생동안 해오고 있지만, 그것은 정복할 수 없는 산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올라도 끝이 안 보이기 때문이지요. 즉,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느 정도 와 있다는 것을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이 인생의 어느 지점이 라는 것을 말하기는 어렵지요. 피아노는 20년 넘게 쳐왔으니까 어느 정도 다룬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표현 할 수 있는 음악의 세계는 무한정한 것입니다. 지금 내 연습실에 많은 악보가 쌓여 있지만 아직 들춰 보지 않은 것도 많고,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요. 결국 거짓없이 끝까지 성실하게 작업을 계속 하다가 이 세상을 마치는 것이 내게 주어진 삶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힘이 들더라도 현재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한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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